근본적 의문
미국에 살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는 '왜 미국에 살아? 미국에서 사니까 좋아?'이다.
가족, 친구를 떠나와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이 나라에서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총기문제, 마약문제,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일상에서 마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미국에 정착하려고 이토록 고군분투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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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삶
한국에서 긴 취준생의 시간을 지나, 한 조직의 일원이 되었을 때 떳떳한 사회 일원이 되었다는 기쁨과 함께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곧바로 나는 이 조직에서 나의 포지션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꼈다.
몇 년 일하다가 결혼해서 육아휴직 쓸 막내 여자 신입
중요한 일을 맡길 필요가 없고, 귀찮은 일은 밀어주고. 회사가 기대하는 나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이런 느낌은 나 혼자만의 피해망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보려고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면담에서 저런 말을 내뱉는 상사를 마주하면서 나는 유리병에 갇힌 벼룩이 되었다. 그리고 회사 생활이 힘들어질수록, 뭐 하러 열심히 하나... 그냥 결혼하고 휴직하면 그만인 것을...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되었다.
지방 문과 여학생
취준생 기간 동안 나는 '지방, 문과, 여학생' 3 단어로 정의되었고, 취업시장 피라미드에서 바닥을 담당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서울로 대학을 안 간 내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서울 수도권 소재의 동일한 대학에 합격했었다. 다만, 1) 원래 목표하던 수준의 대학이 아니었고 2) 내가 졸업할 때면 지역균형발전이 이뤄질 것이라 생각해서, 굳이 많은 비용을 쓰며 상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3) 덧붙이면, 19살의 나는 여자 대통령도 있는데,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자'라는 성별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순진했다.
내 기대와 달리, 1) 수도권대학의 입결은 계속 높아지고 지방사립대의 미래는 어두워졌다. 2) 내 고향에 그나마 있던 대기업들이 떠나며, 다닐만한 회사가 없어졌다. 3) 온라인상에서 남녀 갈등은 최고조를 찍었고, 여자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다행히,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기조는 유지되어서, 지역인재채용이라는 명목으로 공기업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전국규모의 대외활동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았고, 인정도 받았다.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좁은 취업문을 뚫고 들어가서 마주한 현실은 괜찮지 않았다. 애초에 일반 사무직의 최종 면접 대기장에 여자가 절반이었는데, 그중 채용된 여자는 나 '한 명'인 것부터 이 조직에서의 나의 위치와 한계를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애써 무시했을 뿐이지.
내가 한국사회에서 마주하는 유리천장은 내가 선택한 결과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회사원 부모님으로부터 여자 아이로 지방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내가 선택한 길, 이민
하지만, 이민은 '나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마주하는 인종차별, 언어장벽 등은 내 선택의 결과이다.
1) 피부색에 따른 선입견은 솔직히 말해서 내 무의식 속에도 있는 부분이라... 내가 남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할 처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2) 언어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자신도 없다. 영어 때문에 서러운 적도 있었고, 아직 미국회사에 지원도 안 해봤는데 회사 동료들이 '너는 일은 잘하는데, 말이 안 통해서 같이 일하기 힘들다'라는 피드백을 남겨서 잘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벌써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어장벽은 해결책이 명확하다. 노오오오오력을 해서 영어를 잘하면 된다!
그리고 한국에서 한국사람끼리 한국어로 대화해도 말이 안 통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상황은 진짜 속이 뒤집어질 듯이 답답하고 이해가 안 돼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하지만, 영어대화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나 또는 상대방이 영어를 못해서'라고 생각하면 심플하게 이해가 된다.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겪는 장벽을 부수는데 지쳤다.
차라리, 그 힘을 내가 선택한 더 큰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쓰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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