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61
나는 어디로든 떠나게 되고, 그 여정에서 내가 최초로 맛보게 되는 달콤한 순간은 바로 예약된 호텔의 문을 들어설 때이다. '나'는 다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은 안전하다.
> 폭우가 내리치는 밤에 장거리 운전을 한 적이 있다. 다음날 일정을 생각해서, 최대한 목적지까지 가고 싶었지만 연속해서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도로위에 한두시간을 꼼짝없이 갇혀있었다. 결국 우리는 가장가까운 도시의 호텔에 몇시간이라도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하필 호텔의 시스템점검 시간과 겹쳐 바로 체크인이 불가능했고 시스템 점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처음의 10분은 소파에 앉아서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며 얌전히 기다렸다. 하지만 점점 초조해지면서, 기다림이 30분이 넘어갔을 때는 프론트직원에게 얼마나 걸리는지 클레임을 넣었다.
그때 나는 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봐 두려웠나 보다. 새벽에 거지꼴을 하고 나타난 영어가 서툰 아시아인들. 그리고 전혀 급해보이지도 미안한 기색도 없는 흑인직원. 시스템 점검이 진짜일까? 내가 차별을 받는건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할 때쯤 폭우를 피해 온 듯한 백인단체가족이 로비로 들어왔고, 그들도 우리 옆에서 똑같이 로비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이 상황이 차별이 아닌고, 기다리면 해결될 것이라는 안도감이 생겼다.
나는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인종차별을 당한적은 없다. 하지만, 내가 모르고 지나간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인종차별은 사회에 만연하다. 그리고 나 또한 차별의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스스로를 차별의 대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p.80
격렬한 운동으로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 마침내 정신에 편안함이 찾아오듯이, 잡념이 사라지는 곳, 모국어가 들리지 않는 땅에서 때로 평화를 느낀다. 모국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언어의 사소한 뉘앙스와 기색, 기미와 정취, 발화자의 숨은 의도를 너무 잘 감지하게 되었고, 그 안에서 진정한 고요와 안식을 누리기 어려워졌다. 모국어가 때로 나를 할퀴고, 상처내고, 고문하기도 한다. 모국어를 다루는 것이 나의 일이지만, 그렇다고 늘 편안하다는 뜻은 아니다.
> 나는 귀가 밝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주변의 대화나 소리가 들을려고 하지 않아도 생생하게 들린다. 그러다보니, 한인식당에서 정감을 느끼는 순간은 잠깐일뿐, 곧 들려오는 잡음에 귀와 머리가 아프다. 교회 이야기, 누가 회장을 해야하네 마네, 누구 아들이 어딜 갔네, 이혼을 했네, 나이가 몇이네... 자랑과 남 이야기. 이걸 듣기 싫어서 이 먼 미국까지 왔는데...?
반대로, 영어와 스페인어로 가득한 식당 한 가운데에서는 어떤 소음이 들려와도 마음이 편하다. 현재 나의 영어 리스닝은 상대방이 나를 배려해서 천천히 말해주고 주제를 예측할 수 있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 무작위의 대화는 뇌에 입력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가지 궁금한 점은 내가 영어를 지금보다 더 잘하게 되면, 로컬식당에서도 소음을 느끼게 될까?
p. 87
인류는 대형 유인원과 97퍼센트 이상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그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등은 활동량이 인간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들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가만히 있는다. 열 시간 정도를 털을 고르거나 쉬고 아홉 시간에서 열 시간 정도를 잔다. 어째서 이들은 운동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는데 인간과 같은 대사증후군이나 심혈관 질환이 없을까?
> 이 책을 추천한 친구는 같은 부분을 읽고 '인간 사냥꾼' 이야기를 인상깊어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이동능력과 지구력 보다 유인원의 '가만히 있음'이 더 매력적이었다. 나는 유인원과 좀 더 많은 유전자를 공유한 인간이 아닐까. 에너지 넘치는 10대 때도, 치열했던 20대 때도, 30대가 된 지금도 눕어있는게 너무 좋다.
p. 111
내가 다녀온 곳은 그 도시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 도시를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 미국 땅에 발을 붙이고 산지 4년차이다. 하지만, 절반 이상을 한인사회에서 보낸 나는 미국에서 살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
p. 132
자주 떠도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오디세우스와 같은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방랑을 멈추고 그림자를 되찾을 수 있는 어떤 곳으로 돌아가 자기 자신이 되어야할까? 과연 그런 곳이 있기나 할까? 나는 거기에서 받아들여질까? 요술 장화를 신고 영원히 떠돌아다니는 슐레밀,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내 운명은 아닐까? 그런데 그런 삶은 과연 온당한가?
> 누구보다 한옥, 한복, 한식 등 전통적인 것을 좋아했던 내가 미국에서 사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주변에서 언제 한국올꺼야?라는 질문을 한다. 처음엔 정말 가고 싶었다. 가족, 친구들,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 모두 그리웠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에 두고 온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샤프심, 지우개 하나까지 쓰던걸 다 미국으로 배송받았고, 내 방은 엄마의 취미방이 되었으며, 가족과 친구들은 자주는 못보지만(한국에 살아도 자주 못봤을 것 같다.) 미국여행을 한번 오게 되면 몇주씩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리고 이미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퇴사한 그 순간부터, 한국사회에서 나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이라는걸 느꼈던 것 같다.
p.147
환대는 이렇게 순환하면서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그럴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 준 만큼 받는 관계보다 누군가에게 준 것이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세상이 더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이런 환대의 순환을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게 여행이다.
>
p. 164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여행자들이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여행지에서는 그저 이런저런 범주에 따라 분류될 뿐이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고향에서 받는 대접을 요구하고픈 유혹을 느꼈고 실제로 실행에도 옮긴다. 그러나 원하던 것을 얻기는 쉽지 않다. 현지인들은 여행자에게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여행자에게 너무 큰 관심을 갖는 현지인이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뜻이고, 그 필요가 너무 절박하면 그들은 폭력을 써서라도 강탈하려 할 것이다.
>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여행자'가 '이민자'로 바꿔져서 읽혔기 때문이다.
[이민을 하는 동안 많은 이민자들이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이민국가에서는 그저 이런저런 범주에 따라 분류될 뿐이다.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고향에서 받는 대접을 요구하고픈 유혹(내가 한국에서 이런거 하던 사람이야~!)을 느꼈고 실제로 실행에도 옮긴다. 그러나 원하던 것을 얻기는 쉽지 않다(한국에서 누린 사회적 위치 권력). 현지인들은 이민자에게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민자에게 너무 큰 관심을 갖는 현지인이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뜻이고, 그 필요가 너무 절박하면 그들은 폭력을 써서라도 강탈하려 할 것이다.]
미국에서 영주권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평생 살 것 같진 않다. 이런 나에게는 '이민=여행'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늘 붕 뜬느낌이 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붕 뜬 느낌이 싫지 않다. 오히려 착륙해서 두 발로 힘들게 달리기 보다는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떠다니고 싶다. 하지만, 착륙해야하는 때를 내가 무시하고 있는건 아닐까,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중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
p. 183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룹스 이후의 오디세우스 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 이 부분도 여행자가 '이민자'로 바꿔져서 읽혔다.
[현명한 이민자의 태도는 키클룹스 이후의 오디세우스 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민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미국 이민 커뮤니티에 'F1 비자로 생계를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영주권 수속 중 문제가 생겼다'라는 고민글이 올라왔다. 그때 달린 댓글이 매우 인상 깊었다. '미국 이민국은 당신이 열심히 사는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였다. 명언이었다. 한국인 관점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하는 학생은 기특하고, 대단하다며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학생비자로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늘 있었다. 학생인데, 학교만 다녀서는 안될것 같은 그런 느낌... 지금은 최대한 마음을 비우려고 한다. 학생으로 조용히 공부하며 영주권을 기다리자고. 무언가가 되려고 하지말고, 노바디로 있으면서 이민의 신의 도움을 기다리자고.
p.192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살던 집을 팔고 떠나온 터라 정확히 어디로 귀환해야 할지 막막했다. 반면 뉴욕에는 확고한 거점이 있었다. 아내와 내 모든 책들과 짐이 있는 곳. 그러다보니 오히려 서울이 언젠가는 가야 할 여행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서울에 무엇을 남겨두고 왔을까 생각해보니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p.203
일상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해야할 일들, 그러나 미뤄두었던 일들이 쌓여간다. 언젠가는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일들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듯 통제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느낌에 시달리곤 한다. 조그씩 어떤 일들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생긴다. 우리는 뭔가를 하거나, 괴로운 일을 묵묵히 견뎌야 한다. 여행자는 그렇지 않는다. 떠나면 그만이다. 잠깐 괴로울 뿐.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렇다.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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